귀가 후 욕실 문 앞에 접힌 수건과 낮은 조도의 불빛읽을거리 / 문화

읽을거리 / 문화 · 정리했다

씻고 나서야 오늘이 끝난 것 같은 날

집에 도착했는데도 하루가 덜 끝난 것처럼 느껴질 때

밖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답장 몇 개를 미뤄둔 뒤에도 하루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몸은 집에 왔는데 머리는 아직 바깥의 속도를 따라간다.

씻는 시간이 하루의 바깥 속도와 집 안의 시간을 가르는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

끝났다는 느낌은 어디에서 올까

그럴 때 씻는 일은 대단한 의식이 아니다. 욕실 문을 닫고, 물을 틀고, 입고 있던 하루의 감각을 조금씩 벗는 일에 가깝다. 씻는 동안 오늘 있었던 일이 말끔히 정리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던 시간이 한 칸 넘어간다.

퇴근, 약속, 이동, 연락 같은 것들은 집 안까지 따라 들어오곤 한다. 씻는 시간은 그 흐름을 끊는 가장 작은 장면 중 하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해내야 하는 시간도 아니다.

물을 끈 뒤에야 하루가 한 칸 넘어간 듯 느껴지는 조용한 욕실의 장면.

길지 않아도 선은 생긴다

바스타임은 이 짧은 전환을 중요하게 본다. 좋은 바스타임은 꼭 길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날에는 10분 남짓한 샤워만으로도 오늘의 역할을 내려놓는 선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의 바스타임에서는, 씻는 시간을 몸을 관리하는 절차로만 보지 않는다. 하루를 닫는 작은 마감선으로 본다. 아무것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물을 끄고 수건을 집어 드는 순간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간으로 넘어와 있다.